statement

The Secret Life of Buildings / Edward Allington (Professor of Slade School of Fine Art)
건물의 숨겨진 일상 / 애드워드 알링턴 (슬레이드 스쿨 교수)

Non-sculptural sculpture of Shan Hur, is it art or not? / Chun, Youngpaik (Professor of HongIk University)
허산의 ‘비조각적 조각' 작품인가 아닌가, 이것이 문제로소이다 / 전영백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교수)


The emotional sensation evoked by ruined traces / Jay Jungin Hwang (Curator of Project Space Sarubia)
파괴된 흔적이 자아내는 감정의 파문 / 황정인 (사루비아 다방 큐레이터)


When art becomes architecture / Paulina Olszewska (Independent Curator)
예술이 건축이 될 때 / 파울리나 올스제스카 (독립큐레이터)


Sculptural Interventions into Architectural Space / Soyeon Ahn (Art Critic)
건축적 공간에 대한 조각적 개입 / 안소연 (미술비평가)


Marius Grainger (Writer)
마리우스 그레인져


Shan Hur from the artist note
허산 노트 중에서


 

The Secret Life of Buildings

Edward Allington (Professor of Slade School of Fine Art)     

All buildings conceal something, sometimes the things we don’t want to see. Buildings are designed to tell lies, we don’t want to see the mechanisms of our houses and our workplaces, and we want to believe that we live in a clean safe world. We don't want to see wires, pipes, drains, extraction systems, the mechanisms that allow us to maintain, our illusions. The surfaces of the rooms we use mask the structures, which support them.  

In England builders have a not very admirable method of cleaning up which is that common, it has become a popular saying, “ sweep it under the floor boards” meaning lets hide it and forget about it. Some times on lifting old floorboards amongst the dirt are odd objects, or even newspapers that reveal the date those boards where last raised, some times worse things are found the bodies of animals or occasionally human beings. Murderers sometimes like to keep their victims close to them. Building move and change, most are broken in some way, or at least modified. Some parts of them are functional some are not buildings are in their way deceitful.   What if we to imagine a form of archeology which was upside down? Archeologists dig into the earth, excavating, measuring, finding fragments, and sometimes whole objects intact, objects which have been hidden for centuries, millennia even, but would we expect to find whole objects buried in buildings? I think not there would be no reason for them to be there. Yet this what we find in the work of Shan Hur.  
 
We enter a building or a gallery seemingly as we saw it before or as we expect it to be as it was before, it is not, and where is the work of Shan Hur, which we have come to see? It would seem its not there either, and then we seem to see that part of the fabric of the building has been chiseled away. Excavated, perhaps there is some building work that has not been completed?  A repair that needs to be completed, but no there revealed and unmarked is a saxophone, or a perfect Chinese vase. Various questions arise firstly why is this object preserved in the fabric of the building? And how did who ever started to chisel it out so carefully know it was there? Why didn’t they damage it during the process? Do the other columns, walls also contain similar objects is there some form of hidden buried museum of objects in the room? It is a disturbing thought.   

The beauty of Shan Hur’s work is that is that everything is not as it seems. He has carefully added something to the building in a way that is discrete and coherent with its structure. The thought process we find ourselves going through as if like archeologists we have discovered something new and intact, is in fact the reverse. It has not been excavated but sculpted. However what the work of Shan Hur does do is make us question the world around us and what is hidden within it. After seeing his work trusting the structures we live in and take for granted is not as easy as it onc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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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산의 ‘비조각적 조각' 작품인가 아닌가, 이것이 문제로소이다.

전영백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들어가며

아방가르드 미술은 늘 기존의 틀을 깨려한다. 모던 아트만 보더라도, 눈으로 보는 것에 충실히 그려 납작 누드를 그렸던 마네, 빛과 색채의 관계에만 집중해서 형태를 으스러뜨린 인상주의, 그리고 실제 변기를 미술관 좌대에 올려놓은 뒤샹, 바닥에 놓은 캔버스 천에 물감 떨어뜨리기로 추상화를 만든 잭슨 폴록, 그리고 엄청나게 큰 철판을 도심 한 가운데 놓은 리차드 세라 등. 아방가르드라 불리는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이전의 관습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미술사에 남는 이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관찰력이 뛰어나다. 그들은 무엇을 새로 만들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이제껏 무엇이 만들어져 왔는가를 생각한다. 자기 앞에 지켜온 규율과 체제, 그리고 관습적 일상을 유심히 보는 것이다. 현재까지 의례히 그래 왔던 것, 기존에 늘 지냈던 방식은 창의적 미술가에겐 ‘공공의 적’이다.

허산의 작업은 한 마디로, 공간을 점유하는 조각이 아닌 공간에 섞여 들어가는 조각이라 할 수 있다. 기념비적인 조각이 아닌 반(反)기념비적 작업이다. 그는 건물의 구조에 관심을 갖고 이에 개입하는 작업을 한다. 작품이 두드러지지 않고 스스로의 실체가 없다. 실체가 있다 해도 독립된 게 아니라 언제나 건물의 구조에 관여하고 환경이나 공간에 걸친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조각’이라 부르는 범주에 적합하지 않다. 그의 ‘조각같지 않은 조각’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 특히 건물에 대한 일체의 인식을 전환시킨다.

2011년 런던 한미갤러리에서 열렸던 《Situated Senses》에서 허산의 <경사각 inclined Angles>(2011)을 보고 가졌던 언캐니했던 느낌을 기억한다. 작품은 빈 방의 마루바닥을 약간 기울어뜨린 것이 전부인데, 그 느낌은 불안감과 긴장감과 함께 작품에 대한 기존관념을 파기하게 했다. 기울어지 각도의 바닥은 내 몸을 그 공간에서 움직이게 하고 방의 구조를 탐색하도록 하였다. 일상 삶의 공간에서 얼마나 내가 그 구조를 알고 느끼며 사는가를 되새기게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조각을 전공한 작가가 왜 기존 건물에 개입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을까? 허산이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척 ‘인간적’이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그가 갤러리 앞에 한창 진행 중이었던 공사를 보고, 흥미롭게 감상하고 있었더니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나와 비키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그는 자신이 조각가로서 작품과 비작품을 구별하지 못한 당황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건물과 건물의 건축과정, 그리고 그 구조에 개입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솔직한 이 얘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작가다운 관찰력과 작가다운 발상의 전환이라 여긴다.

비일상적 계기를 통한 ‘상황의 구축’

허산의 작업은 일상의 관습에 묻힌 공간 구조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한 마디로, 작품이라 주장하지 않는 작품인데, 익숙한 공간에 변화를 주어 언캐니한 느낌을 자아낸다. 일상의 삶 속 관습적 인식과 생활의 패턴에 의문 제기하고 전환을 유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연관되는 이론적 개념으로 1960년대 후반 기 드보르(Guy Debord)가 제시한 ‘상황’의 구축을 떠올릴 수 있다.

드보르를 중심으로 한 상황주의자들은 주체가 개입할 수 있는 자발적 순간들은 일상 곳곳에 산재해 있다고 믿었고, 이를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주체의 적극적인 개입의지로 일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실천을 유발시키는 개념이다. 드보르는 주체가 개입하는 우연적이고 비일상적 경험이야말로 자본주의적인 일상성을 폭로하는 ‘계기’라고 보았다.

드보르가 제시한 개념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그 실천적 이데올로기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정치성을 뺀다면, 허산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의 작업은 공간과 건축의 구조에 개입하여 주체의 관습적 지각에 영향을 주고 일상의 변화를 초래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드보르가 말하는 ‘상황의 구축’이란 개념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러한 비일상적, 예술적 계기를 통해 작가가 유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관람자의 지각에 대한 미적 충격이다. 그러한 지각의 전환은 공간과 건축 구조, 더 나아가 일상성에 대한 균열과 파열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허산은 건축 구조의 물리적 ‘상황’을 조성하여 일상에 대한 인식과 감각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공간적 사건을 통한 상상의 내러티브

허산의 언어, 혹은 미적 전략이라면 적게 말하고 크게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많이 건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우리에게 전체 구조를 느끼게 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이다. 관람자가 적극적인 개입은 상상력의 발동인데, 우선 기존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 그것에 대한 의문과 숨겨진 것에 대한 종잡을 수 없는 상상으로 진행된다. 예컨대, <부숴진 기둥 Broken Pillar>(2011)을 볼 때, 우리는 기둥이란 구조의 역할을 새삼 느끼고, 작가가 일으킨 약간의 변화가 초래할지 모를 엄청난 결과를 상상한다. 이에 대한 관람자의 심리는 언캐니(uncanny)와 불안, 또 긴장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심리적 동요는 작가가 만든 위험스런 ‘사건’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앞뒤없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켜놓고 관람자로 상상하게 만드는 셈이다. 그 결과, 사건이 일어난 공간은 더 이상 지금 여기서 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즉, 과거의 사연과 미래의 변화를 초래할 내러티브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허산의 공간 작업이 시간과의 연계를 불러오는 대목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의 <기둥의 공 Ball in the pillar>(2011), <잊혀진 no.2 Forgotten no.2 >(2010), 그리고 <행운의 동전 Lucky Coins>(2010) 등에서 보는 벽이나 기둥에 박힌 오브제 – 농구공, 도자기, 동전 등 – 는 내러티브의 플롯을 위한 구체적 증거로 제공된다. 고고학의 발굴 작업처럼 그 지점에 연관된 역사적 스토리, 혹은 탐정소설에서 읽는 개인적 사연을 연상케 한다.

가장과 환영: ‘고안된 우연’

이렇듯 상상력과 호기심을 유발하게 하는 허산의 작업에 대해 새로운 의미의 ‘가장(masqurade)’과 ‘환영(illusion)’을 활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감추기도 어렵지만, 이보다 어려운 게 그 반대다. 이와 관련하여 예술의 의미에 대해, 특히 회화의 정수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라캉(Jacques Lacan)은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시오스(Parrhasios)의 고전 우화를 소개한 바 있다. 새가 날아와 앉으려다 부딪혀 떨어지도록 나무를 똑같이 모사한 제욱시스보다, 걷어 올릴 수 없는 커튼을 그린 파라시오스가 예술의 진의를 꿰뚫고 있다는 내용이다. 우화를 통해 라캉이 말하고자 한 것은 회화의 핵심은 그것이 그려진 이미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눈속임(trompe-l’œil)’에 속아 넘어가는 게 아니라 눈속임을 인식하고 향유하는 게 진정한 예술이란 것이다.

위의 우화는 회화를 넘어 조각을 포함한 예술 일반에 관한 것이다. 허산이 건물의 구조와 연관된 조각을 통해 가장과 환영을 다루는 것도 이러한 예술의 근본 테제에서 멀어 보이지 않는다. 기존에 있는 기둥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균열을 내거나 부수는 그의 <부숴진 기둥>, 빈 방의 바닥을 기울여 경사진 각도를 만든 <경사각>, 벽에 구멍을 내고 항아리를 박아 마치 발굴 현장처럼 만들어놓은 <잊혀진 no.2> 등을 볼 때, 이러한 가장과 환영의 방식을 포착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조각만이 가능한 지극히 물리적 상황을 연출하여 추상적 개념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즉 그의 작업은 기둥과 벽 등 건물의 구조, 그리고 부숴진 돌가루와 흩어진 오브제의 파편 등 재료의 물리적 속성을 다룬다. 그런데 작업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개념과 상상을 부른다. 환영과 상상의 힘을 통해, 리얼리티에 대해 갖는 우리의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것은 실제임을 가장한 사건의 현장에 인해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을 위장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이런 방식은 일종의 ‘고안된 우연’이라 할 수 있다. 허산의 작업은 작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여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나오게 하는 방식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반긴다. 최대한 우연처럼 보이게 하려 미리 계산하고 만든다. 계획과 통제를 벗어나는 삶의 임의적 방식과 닮아 있다.

부서진 게 아름답다?

오늘날의 미술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미술의 임무란 차라리 그 기준이 가진 관습과 타성을 직시하게 하고, 기존 인식의 한계를 파고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실행하는 작가들은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여 이제껏 알지 못한 아름다움을 제시하곤 한다. 그런데 종종 이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은 오히려 추한 감정을 갖기도 한다. 이상하고 낯선 것이 미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미와 추의 명확한 구분이란 게 얼마나 인습적인가를 실감한다.

허산이 조각가로서 미에 대해 제시한 새로운 점은 부서진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다. 그는 완벽히 깨끗하고 우아한 화이트 큐브의 공간을 아름답게 보지 않고, 반대로 적막하고 숨 막히는 공간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여기에 잡음을 일으키고 흐트러뜨린다. 완벽한 이성에 대한 인간적 흔적을 만든다고나 할까. 이런 행동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적막 속의 울림”이고 “숨 막히는 공간에 숨을 뚫는” 작업이다.

“찾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작품”

허산은 관람자를 탐정으로 만든다. 그의 전시를 보는 일은 그의 ‘조각같지 않은 조각’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는 명백한 것을 꺼리는 작가이다. 예컨대, 그의 <경사각>이나 <벽의 균열Crack on the wall>(2013)도 예민하게 느끼고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품들이다. “찾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작품”이라는 작가의 말은 그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그의 작품을 알아보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조각 자체보다 조각을 둘러싼 공간과 주변환경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물질적인 것을 이용하면서도 공간을 비우는 작품”이라 강조했다.

허산의 작업은 몸의 움직임이 개입되는 작업, 몸의 물리적 반응을 유발한다. 그는 관람자들의 “물리적인 반응”을 기대하면서 그들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일종의 ‘참여관찰’처럼 작가는 작업의 상황을 만들어두고 관람자를 관찰한다. 기울어진 경사를 알아보기까지 방을 이리저리 걷게 하고, 아래 벽에 박힌 항아리를 자세히 탐색하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조각이란 매체는 몸을 직접 움직이고 개입하는 점이 특징이다. 오늘날 뇌만 지나치게 발달하는 현대인이 결여하는 점이기도 하다. 허산의 작업은 몸을 회복하고 특히 몸을 움직이는 주체의 주권을 복권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의 조각같지 않은 조각은 도리어 조각에 충실한 작업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허산의 작품은 조각과 비(非)조각 사이 어딘가 위치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이것이 작품인가 아닌가에 의문을 품게 한다. 이것이 그의 조각을 창의적이라 여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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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흔적이 자아내는 감정의 파문 

황정인(사루비아 다방 큐레이터)

텅 빈 공간을 들어서니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기울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기둥과 강한 충격으로 움푹 파인 벽면이 눈에 들어온다. 과거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만 같은 현장. 바로 작가 허산이 만들어낸 위장된 상황 속에 우리는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허산은 철저하게 작가의 계산에 의해 구축된 가상의 조형물을 통해, 일상 속의 반전, 침묵 속의 소음, 평정 속의 긴장, 정체 속의 변화, 익숙함 속의 낯설음이 공존,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부서진 잔해, 금이 간 기둥과 같이 불완전하고 파괴적인 형태의 조형적 요소들은 완벽하고 깔끔하게 마감된 형태들로 가득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 불편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별다른 의미 없이 텅 비어있던 공간을 단숨에 의문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서술적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다. 이때 상처없이 깨끗한 피부 위에 남겨진 작은 흉터처럼, 작가가 만들어 내는 공간의 상흔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과거에 그 자리를 스쳐지나갔을 법한 사실적 정황을 유추하게끔 만드는 지표적 기호(indexical sign)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지표적 상흔들을 토대로 한 작가의 작업은 설치형태에 따라 크게 <Forgotten>시리즈와 <Broken Pillar>시리즈로 발전한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Forgotten>시리즈는 페인트로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는 벽면이 정체모를 강한 충격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그 자리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오브제들이 모습을 드러내도록 구성한 설치 작업이다. 무너져 내린 벽채 안쪽에는 청화백자, 금관악기, 동전, 농구공 등 고고학적 발굴, 역사적 혹은 우연적 사건 등의 다양한 해석을 유발하는 기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들 오브제가 지닌 공통점은 모두 무너져 내린 벽면이나 그 벽이 속한 공간과의 연관관계가 전혀 없는 사물들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작품을 보는 이들은 각각의 오브제에 대해 갖고 있는 개인적 경험 내지 사회화된 의식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무너져 내린 벽의 원인관계나 역사적 의미에 관해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작가의 작업에서는 부서진 벽과 그로 인해 남겨진 잔해가 공간 자체에 부여하는 긴장감, 그리고 그것이 발견되는 상황이 작품 전체의 주제에 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설치미술 특유의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의 측면이 작가의 조형적 요소에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Broken Pillar>시리즈의 경우, 기존의 공간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탐색이 뒷받침되어 만들어진 공간설치작업으로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작업이기도 하다. 기존에 수평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에 수직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가상의 기둥을 만들고, 그 중 일부를 부서지기 일보직전의 상황 속에 위치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의 강도를 극대화시킨 작업이다.

두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작업자체가 지닌 조형성을 포괄하면서 공간 전체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설정이다. 작가는 공사현장의 파괴된 흔적들을 모티프로 한 작업들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가려진 특수성, 완전함 속에 감춰진 불완전함, 정체와 변화와 같이 상충되는 개념들이 공존하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파괴와 변화의 흔적들을 담고 있는 유형의 조형작업보다, 그것이 위치함으로 인해 공간에서 무형의 개념들이 상충하며 빚어내는 긴장감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특히 자연스러운 동선이동에 따라 눈에 잘 띄지 않는 공간에 숨어있던 작품들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거나, 기존의 공간에 이미 존재했던 것처럼 감쪽같이 위장된 오브제들은 이러한 상황설정에서 느껴질 수 있는 감각적 충격을 더욱 극대화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이처럼 파괴의 흔적들이 남긴 공간의 상흔들은 완벽하고 완전한 공간에 긴장감을 유발하고, 변화되는 상황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보는 이의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던 감각들을 하나 둘씩 일깨운다.

The emotional sensation evoked by ruined traces

Jay Jungin Hwang (Curator of Project Space Sarubia)

As I enter the empty space, my eyes are met with a slanting column that may crumble down at any moment and a wall dented probably by a strong blow. A scene suggestive of something happening in the past; this is the situation of camouflage we have set our foot in. Shan Hur’s works are crafted by thorough calculation. Through the installation artworks, he creates a context which includes contradictions in daily life, noise in silence, strain in serenity, change in stagnation, and strangeness in familiarity. They coexist and collide at the same time. His works such as collapsed ruin and cracked column are put into extremely ordinary space of everyday life which has been flawlessly put together. This unusual combination arouses uneasiness in viewers mind. Thus, this meaningless and empty space is instantly transformed into a narrative room that is filled with questions and curiosity. At this moment, viewers can use the scars artist put in space as indexical signs to analogize circumstantial reality which would have happened there, just like a tiny scratch on smooth fair skin. Depending on the construction types, these artworks are developed into two series: <Forgotten> and <Broken Pillar>.

Firstly, one of his major works, <Forgotten> series, is installation artwork where unexpected objects are revealed once the neatly painted wall has been struck down by a strong force. Those objects, which trigger varied interpretations to archeological excavation, historical or accidental events, include blue-white porcelain, a brass, a coin, and even a basketball. However, what they have in common is that they are unrelated to either the collapsed wall or the space the wall belongs to. As a result, each viewer can come up with various explanations on possible cause-and-effect or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destroyed wall and grant their own meanings derived from personal experience or socialized consciousness. From this context, tension created by fallen wall and its ruins and the situational factor where they were found, contribute to the overall theme of the work. That is why site-specificity plays such a crucial role in his works. Similarly, <Broken Pillar> series was created through extensive study and observation of existing space and thus strongly represents his intention. A broken pillar is vertically put onto horizontal space. Then the degree of tension has been maximized by making them look like they are going to collapse at any time.

What we need to pay attention on these two series is the set context that occupies space beyond constructed forms. Hur uses ruins at the construction site as motives to effectively display contradicting concepts such as uniqueness buried in everyday life, imperfection hidden inside perfection, or stagnation and change. Therefore, the artwork plays its role not merely by having disguised objects that are destroyed and transformed, but the contracting concepts appearing in the space and the tense atmosphere altogether. Especially, the sensual impact in these situational settings becomes maximized by the objects that appear from hidden to be spotted by the viewer’s movement. At the same time, they seem to have existed in the given space already. In this way, dimensional scars left by traces of demolition give rise to tension in flawlessly stable space and trigger curiosity about changing conditions and by doing so, they open the viewers’ eyes to dormant senses deep inside the viewers’ inn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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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art becomes architecture On works of Shan Hur

Paulina Olszewska (Independent Curator)

As an artist, choosing a field of art and architecture is an enormous challenge. That challenge is even greater when it is not about using architectural motifs in art or dealing with architectural forms, but using art to create an architectural space and out of it, creating a completely new, distinct form. It is not an easy task and surely, few artists have sufficient skill to find their own, individual way of working with art and architecture. Doubtless though, Shan Hur belongs to this singular group of artists who have found their own language in working with art and architecture. In his case, although the risk of failure is high, the artist manage to meet this challenge and, more importantly, to succeed.

I came across the works of Shan Hur in 2011 while working on a proposal for an exhibition whose main subject oscillated around art and architecture. I was immediately impressed by the works of the Korean artist who was based in London. I decided to contact the artist right away and get to know his works better. Since then, each time, I have been amazed by the new projects he has made, by his creativity, originality and enormous artistic sensibility as well as the intelligent ways of dealing with architecture.

It is difficult to define Shan Hur's artistic practice and to assign it to a particular artistic movement. Shan Hur's work goes far beyond strict architectural and artistic definitions and their limitations. His artistic practice combines many interdisciplinary elements, which are rarely combined and very often don't go together.

As mentioned above, Shan Hur works with two contradictory attitudes: art and architecture. Nevertheless the originality of his installations is based not only on using those antithetical disciplines, but on creating the right oppositions, sometimes even those which might not be chosen.
It would be a huge simplification to describe Shan Hur as only a sculptor, the definition does not go far enough. Within his architectonical installations he creates not only a material form but, what is more important, another dimension, which changes meaning of the space and the surroundings.
On the other hand the artist cannot be described as a builder because the space that he calls to life loses its useful character. It becomes the opposite of utilitarian, though seductive aesthetically.
Within his experiments, Shan Hur has managed to find his own highly original approach to art and architecture. The artist has discovered artistic elements in architecture, using his imagination, creativity, critical approach and rebellion against established rules. He shows distinctly architectural qualities in making art: spacial and logical thinking or experiment with using certain forms, giving elements their aesthetic meaning. The artist furthermore has taken out of each of this discipline certain elements both have in common: confrontation and interactivity with the surroundings and people who find themselves within.
Shan Hur has decided to use all of these components to create a new, autonomous form of artistic expression. That is why in each installation, the artist balances these qualities and, depending on the situation and given possibilities, reaches for a particular one. He combines them and changes them until he creates a form that is adequate for the conditions and space.

Shan Hur's installations can be found both in public and in exhibition spaces. Each is characterized by its own conditions. Each has a different specific, different qualities, and possibilities for use. Working within exhibition space is associated with limitation and isolation and accessibility to only a limited, select public. At the same time exhibition space provides another type of reception: more intimate and individual. It also automatically gives an art work status and defines it as valuable, unique and special.
Unlike in an exhibition space, working in a public space does not mean limitation and isolation. It remains open and is involved in many various dependencies, which even the artist himself cannot predict. It also means the work is available to everybody, but such a situation may also meet with ignorance and unawareness of the art piece.

It is the artist's enormous intelligence and intuition that suggest the kind of element that should be added to the space. The method used by the artist can be described as an undisturbed disturbance and can be understood as an improvement of the space, which at the same time becomes an integral part of the surrounding. The originality and uniqueness of Shan Hur's works is based on the relation with each to the spacial situation. Every installation has a very individual character, depending on the circumstances and each affects space differently. The artist doesn't rely on the generality of his pieces, so they cannot be simply taken out from the context they were made for and placed in new surroundings.
The artist plays with the viewer's common sense and rational way of thinking about space and its rules. He seduces the audience and confronts them with many illogical contradictions, which put the recipients in a very uncomfortable situation. When looking on the works of Shan Hur, they seem at first glance to be an integral element of a space. They seem to be primary, there from the very beginning. But somehow, without knowing how, they have transformed. As though they were alive for a short glimpse and could evolve into a different shape. Maybe an unidentified force has influenced them and changed their regular appearance to a unusual form?
Shan Hur's installations surprise the viewers and play with their rational way of thinking about space and its rules. The mastery of Shan Hur lies on creating an illusion, which ensures that the changes are an integral part of the space. An illusion which runs counter to common sense. An illusion which seduces, because it remains open for many questions and interpretations and offers multiple narrations.

Shan Hur's installations are also enriched with a hidden mystery. It is not difficult to discover that almost each of the architectonical forms created by the artist contains a discovery as well. It recalls a archeological excavations, discovered in this particular place just by an accident. Inside an installation certain objects are hidden: small coins, vases or pottery. Elements that might be normally found on an archeological site.
Under any other circumstances they represent traces from cultures and societies which are now extinct. Only with their help we are able to reconstruct or at least imagine how our ancestors might have lived. But once again, the artist doesn't go for a straight interpretation, but confuses the viewers and put them in irrelevant situation. The side looks like exactly as a fresh discovery, dug out just recently, with rubble and dust lying around. But then how come a basketball or musical instruments, objects used nowadays, can be found amidst traces of old times and symbols of culture which don't exist any more? How did they get there? Who hid them? What message about the culture they represented have they brought with them? These and many other questions bring inconsistency and become an occasion for a deeper critical reflection about the condition of our contemporary culture.
Again the artist uses the tool of illusion, which seduces and questions our common sense of the received reality we live in. What he creates could be defined as archeology of the contemporary, a form which, according to logical ways of thinking, has no right to exist.

As Shan Hur admits himself, working with a hidden treasure has also a second meaning and relates to the artist's personal experience. Since childhood the artist has worn a scarf over one of his eyes. Each time he looks with this particular eye at a white surface a small black crack appears. As a child he thought of it as a hidden treasure only he could see. When he started to work as an artist, his personal condition changed to become a limitless source of artistic inspiration. Perhaps in this disturbance of world view, an interpretation of Shan Hur's installation could be found? Maybe because of that, the artist is able to create such disturbing architectural installations, which easily blend into the surrounding, as if they were part of our perception.
Maybe, but not necessarily. The artist himself doesn't insist on one interpretation and doesn't imply a correct one. For him it is more important if his works are open for imagination and trigger curiosity rather than that they can be allocated one particular interpretation.The artist lets recipients find their own way to explain the situation they are confronted with.

After dealing with the works of Shan Hur, you gain another perspective on world. You start to be more careful and focused while looking at your surroundings. Without a doubt installations by Shan Hur arouse childish curiosity and push us to observe our surroundings more carefully.

It is difficult to juxtapose Shan Hur's artistic practice with that of other artists and find direct analogies or the same approach toward art and architecture. But what can be found in Shan Hur's works is dedication and progress. The artist continually develops and improves his work within the field he has had selected. With each new project he reaches for new ideas or totally modifies an old one. But he doesn't copy the same pattern. Rather, each of his projects is a new discovery. It has another character and is totally different. This makes us look forward to new works by Shan Hur. What new surprises and treasures will they bring thi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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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공간에 대한 조각적 개입
Sculptural Interventions into Architectural Space

안소연(미술비평가)
Soyeon Ahn(Art Critic)

현대미술에서 “공간”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출구를 제시해왔다. 역사적 아방가르드들의 시각적 해방과 형식주의 모더니즘을 지탱해준 ‘거리두기(Alienation)’로부터의 탈출이 그것을 말해준다. 공간에 대한 동시대의 관심은 수직적인 역사적 서사와 수평적인 사회적 맥락들을 넘나들며 일상을 지배하는 여러 장치들에 대해 질문을 갖게 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형식들을 이끌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장소-제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현재”라는 시공간을 탐색하는 동시대의 다양한 실천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그 흐름의 연속에서 볼 때, 작가 허산은 공간에 개입하는 하나의 시각적 모델을 다루고 있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공간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는 어떤 정지된 시간을 담보로 한 비현실적 공간에 가깝다. 끝없이 흘러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출몰하는 공사 현장이나 문 닫는 상점은, 작가에게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봉인된 상상적 시공간의 체험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허산의 작업은 도시를 산책하면서 현실과 단절된 공간에 대해 그가 우연히 겪었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공간의 역설

허산의 <BROKEN PILLAR #01>(2008)은 부서진 기둥 자체에 대한 관람자의 일방적인 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텅 빈 전시 공간 내부의 건축적 맥락에 따라 임의의 기둥을 세우되,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위태롭게 부서진 형태라는 점에서 관람자의 신체적 긴장과 심리적 불안을 유도한다. 천장과 바닥에 마치 존재의 흔적처럼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둥의 파편들은 그 불완전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공간 전체를 압도한다. 그것은 “장소성”을 상실한 침묵의 텅 빈 공간에 나 있는 미완의 작은 파열 때문이다. 진공상태인 것처럼 완전한 침묵을 이루고 있었을 공간에서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작은 파열음은 침착한 공간을 매우 복잡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분명 공간을 점거하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일어날 것인지, 무엇이 사라져버린/나타날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말아야 하는지. 낯선 공간에 대한 역설적인 지각 경험은 쉽게 정의되지 못한다. 이는 텅 빈 추상적 공간에 다시 진입하려는 새로운 “장소성”의 개입 때문이다. 관람자가 겪을 시지각적 혼란은 그들로 하여금 그 공간을 끊임없이 사유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

허산이 영국의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대학 건물에서 보여준 <BROKEN PILLAR #06>(2011)은 앞선 연작들과 조금 다른 맥락에 놓여있는데, 텅 빈 공간이 아닌 <BROKEN PILLAR #02>(2009)처럼 일상의 기능하는 공간에 대한 불편한 침입을 보여준다. <BROKEN PILLAR #06>에서, 그는 건물의 현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흰 색 기둥에 주목했다. 네 개의 기둥 중 건물 바깥쪽에 있는 기둥 하나에 위태롭게 균열을 낸 작가는, 텅 빈 공간만큼이나 더 이상 주의를 끌지 못하는 일상의 익숙한 형태들에 대한 도발적인 전복을 꾀했다. 일종의 건축적 구조에 대한 그의 반/건축적 제스처는 신체의 경험 및 시지각의 혼란을 넘어서서, 물리적 균열이 함의하는 심리적 충격과 사회적 발언으로 확대된다. 1960-70년대 이후 미술에서 실제 건물과 건축적 재료들을 이용한 반/건축적 흐름을 참고해 볼 때, 허산이 보여주는 건축 공간에 대한 낯선 개입은 실제 공간에 잠복되어 있는 시지각적·심리적·사회적 함의를 들춘다. 단단한 물리적 공간에 저항하는 미세한 균열은 그 공간이 유도하는 익숙한 상황을 단숨에 전복시키고, 오히려 관람자에게 숨겨진 속살-기둥의 단면 및 철골 구조 등-을 폭로하면서 복잡하고 불안정한 내부와 직면케 한다.

한편 런던의 가젤리 아트 하우스(Gazelli Art House) 내부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놓은 <KNOTTED PILLAR>(2013)는, 그동안 작가가 <BROKEN PILLAR> 연작에서 탐색해온 건축적 공간과 장소성의 문제를 보다 유연하고 위트 있게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갤러리 외벽을 따라 본래 건축적 설계로 만들어진 두 개의 기둥을 갤러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KNOTTED PILLAR>는 갤러리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실제의 기둥 두 개와 복제된 기둥 두 개가 나란히 마주하는 구조다. 허산은 두 개의 가짜 기둥 중 하나에만 극단적인 형태의 차이를 부여했는데, 그것은 느슨하게 매듭지어진 단단한 콘크리트 기둥으로서 마주한 형태들 속에서 시지각의 한계를 노골적으로 가중시킨다. 이는 그가 안정되고 통합된 도시의 풍경 속에서 발견한 불안정한 공간-공사 현장이나 문 닫는 상점-에 대한 체험과 마찬가지로 끝없는 시지각적 충돌로 인한 현실과의 불일치 및 언캐니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요컨대 허산은 일상의 익숙하고 안정된 공간에 대해 자동화된 인식적 틀에 저항하는, 소위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방식으로 세계를 재인식한다.

조각적 개입

허산이 실제의 건축 공간에 개입하는 방식은 매우 역설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건축적 공간에 대한 반/건축적 제스처를 취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낯설게 하기 방식에 따른 관람자의 시지각적 혼란과 심리적 갈등을 십분 활용한다. 그의 작업에서 낯설게 하기의 방식은 건축적 공간에 대한 조각적 변형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그의 일련의 작업들을 보면, 삼차원 공간에 새로운 형태의 구조-파괴된 기둥과 균열된 벽-를 이식해 놓거나 특수한 사물들-도자기, 동전, 농구공, 금관악기, 주전자 등-을 배치하는 등 최소한의 조각적 개입을 시도해왔다. 20세기 이후,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형태”와 “공간”의 상관성을 집요하게 탐색했던 것처럼, 허산은 침묵하듯 텅 빈 현실의 공간을 증명하기 위해 조각적 형태들을 공간 속에 흩어놓았다. 이처럼 그는 조각적 간섭을 통해, 재현 불가능한 삼차원 공간에 대한 신체적인 지각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의 <BROKEN PILLAR> 연작과 <FORGOTTEN> 연작을 볼 때, 작가는 현실 세계의 경계를 봉인하고 있는 스크린에 일부러 균열을 일으킨다. 그는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불필요한 기둥을 새로 구축하고, 공간을 지탱하고 있던 견고한 기둥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내며, 편평한 하얀 벽에 깊숙한 구멍을 낸다. 그의 조각적 간섭 행위는, 완벽하게 숨겨왔던 비가시적 공간을 폭로하고 그것을 신체적으로 경험할 것을 제안한다.

한편 그것은 또한 일상의 평범한 공간에 일어난 특수한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매우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고유한 역사·전통·문화·사회적 상징물들이 본래의 장소에서 떨어져 나와 낯선 상황 속에 서툴게 이식된 후, 끊임없이 공간 속에서 되살아날 때의 초현실적 경험은 사실 뭐라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그런 식으로 공간에 연루된 조각적 형태들은 공간에 대한 신체적 경험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어떠한 사건의 복선 내지 결말처럼 수수께끼 같은 기억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기도 한다. 이는 부서지고 파묻힌 물건의 잔재가 바로 발견된 오브제의 분열적이고 이중적인 표상을 환기시키고 있음을 말해준다. 허산의 작업 중에서 건축물 내벽에 구멍이나 균열을 낸 후 그 속에 특정한 사물을 삽입해 넣은 <HOLE ON THE WALL>(2006), <CRACK ON THE WALL #01, #03>(2011, 2013)를 보자. 그가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 근거해 발견해낸 사물들은 이미 그 본래의 상징적 권위와 정체성을 대부분 상실했다. 이렇게 수집된 사물들은 그의 설명대로, 현실의 건축적 공간에 파고들어 주변 환경과 교감하는 조각적 형태로 복권된다. 이는 또한 허산의 작업 전반에서 볼 수 있는 “건축적 공간”에 대한 역설적 태도와 그 공간에 대한 치밀한 “조각적 개입”의 시나리오를 추측하게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구축한 섬세한 시각적 장치들을 통해 “공간”을 둘러싼 동시대 미술의 거대 담론을 매우 유연하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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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US GRAINGER

Shan Hur’s sculptural interventions disrupt the viewer’s perception of the white cube as an art container, directly implicating the gallery space as an active element in the artwork itself.  The ideas which inform his practice derive from a careful examination of construction sites and closed shops, fascinated by the moment of transition when a particular space is reconfigured for a new purpose.  During this transition the polished veneer of the city is temporarily removed, thereby exposing its farcical nature, and the mechanisms by which this veneer is generated.

Hur exposes and plays with the facade of the exhibition space, transforming it into a site of discovery. Rather than the passive role in which the viewer traditionally receives sculpture within the context of the gallery, here he becomes an active participant, in what seems to be an excavation. Though the participatory aspects of Hur’s work are mental rather than physical, they uncage an inquisitive imagination, evoking memories of the adventures and discoveries made during child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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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 Hur

from artist's note

When I see closed shops or construction sites in the city I look at them carefully. You can easily find these scenes.
They are vague and attractive because the space used to be different - it is being changed into something new.
Walking through the debris I have feelings that are neither positive or negative because certain things have already
happened and are progressing in a certain direction. Such scenes interest me as they temporarily sidestep into
silence and incompleteness. I like the way something is revealed in this gap.

Sculptures bigger than human scale seem to be exaggerated. One of the issues I have focussed on is how to reduce
the burden of the volume of sculpture. I then connect this mass to it's surroundings, but not just as a part of the whole.
I think sculpture should communicate with it's circumst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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